Photography

Deok K Park (박덕규 권사)

December 29, 1920 ~ May 27, 2017 (age 96)

Obituary

나의 할머니

     할머니는 어른이셨읍니다. 단순히 나이를 먹는다고 모두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닌것 같읍니다. 진정한 교육은 어른을 보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하는데 할머니는 집안의 큰 어른이셨읍니다.   할머니는 정말 어려운 가운데에 결혼 생활을 지켜 가셔야 했지만 가정의 중요함과 가정이 곧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임을 아셨기에 자손들이 세워가야할 가정들을 직접 축복하기 원하셨읍니다.  모든 자녀와 손주 손녀들의 가정을 일일이 달려가 축복해 주셨고  97세의 나이가 넘어서 마지막 손자 결혼식도(브라이언) 주님 안에 그 가정이 세워지고 보호받기 원하는 간절한 마음 하나로 여러 불편함을 넘어 기쁘게 참석하셨읍니다.

    때로는 표현의 기술이 부족하여 여러 오해를 낳기도 했고 사랑의 방법들을 잘 몰라 먼 길을 돌아오기도 하셨지만 할머니는 진심으로 삶에 최선을 다해 임하셨기 때문에 아직 힘이 남아 있을 때의 혈기도, 우리 모두가 끈임없이 싸우는 세상과 육신의 욕심도, 결국에는 모두 내려 놓으실수 있었던것 같읍니다.  무엇보다 불편했던 관계들과도 모두 화평을 맺고 삷의 경주의 끝에서 승리하셨읍니다.  세상에 큰 업적을 남긴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들을 성취한 사람도 많지만 마지막 호흡의 순간에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모두 화해하고 자신의 아픔은 뒤로하고 생사를 가르는 임종의 자리에서마저 자손들을 일일이 축복해 주기 원했으며,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의 품안에서 평화롭게 생을 마감하셨기에 할머니는 누구보다 부자이고 승리자 이십니다.  삷의 날이 길다는 것은 그만큼 상처의 테가 많고 깊을 수 있다는 것인데 그것을 모두 떨쳐내고 눈을 감을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지요.  모르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오히려 쉬울수 있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모두 용서하고 품어주고 손을 내밀어 화해를 이루고 이 생을 떠나갈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할머니!
할머니의 가장 어린 손자 에릭이도 어느덧 서른을 바라보며, 결혼을 하여 벌써 아이가 돌이 넘었는데, 할머니 어릴적, 우리 모두가 지나왔던 그 유년시절, 꿈 많고 똑똑했던 한 소녀가 너무 일찍 세상에 내몰리었지요.  일제 강점기, 6.25, 월남, 세계 2차 전쟁, 한국의 무수한 격동기 속에서, 이제 대학을 갓 졸업했을 나이인 스물셋에 남편을 허망하게 잃고 미국나이로 만 두살인 Audrey 만한 아이를 데리고 여자 혼자 홀로서기를 하려니 얼마나 강해져야 했는지 어렴풋이나마 상상을 해 봅니다.  Single parent로 어린 아들을 지켜내고 지독한 가난과 험한 세상 속에서 본인이 살아남기 위해 강함을 자꾸 덛입다보니 때로는 그것이 오히려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본의 아니게 아픔을 주게도 되었던것 같읍니다.  더구나 금광을 여럿 둔 매우 유복한 부자집 며느리에서 한 순간에 남편을 잃은 것도 기가 막히셨을텐데 천대받고 억울하게 쫒겨나시던날 후일에 미국에서 이렇게 많은 자손들을 이루고 증손자들 까지도 모두 찾아와 가족 모두의 축복속에 거의 100세를 사실줄 상상치 못하셨을거라 생각해 봅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저희도  어렵고 힘든 시간들을 지나갈때 , 외로울때, 아무도 나의 고통을 모른다고 생각할때, 하나님께서 할머니를 어떻게 인도 하셨고, 때마다 어떻게 도움의 손길들을 보내셨으며, 오늘처럼 아름다운 생의 마무리를 허락하셨는지 앞으로 각자의 삶들을 살아내며 할머니와 할머니를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할수 있기에 감사를 드려요.  할머니의 치열했던 삶속에서도 하나님을 선택하신 그 옳은 선택과 아무리 어려워도 늘 정 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온 몸을 다해 싸우신 자신과의 싸움덕에 오늘 온 가족이 한 마음으로 할머니를 천국에 기쁘게 배웅할 수 있게 되어 또한 감사를 드립니다.

예순에 하나님을 영접한 이후로 지난 40년간 할머니가 드릴수 있는 최고의 것을 늘 하나님께 드리기 원해 한때는 4천 수백명의 이름을 매일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올려 드리시던 할머니. 대부분 사람들이 내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하지 않을때가 많고,  아프고 고통중에 있는 가까운 이웃 몇명을 위해 계속 중보를 한다는 것도 싑지 않은데 말이지요. 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고  알아주지 않아도 매일을 늘 정 자세로 무릅꿇고 소리를 내어, 새벽마다 5시간 가까이 새벽기도를 드린다는 것이 확실히 보통 사람이 할수 있는 일은 아니었지요.  다리에서 쥐가 나고 Bakersfield Gosford 집에 있을때는 때로 목에서 진짜 피가 나도록.  소설이나 먼나라 영화 같은 이야기 인것 같으면서도 그런분이 가족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까이 있는 가족들이 함께 감당해야 할 몫이 있기에 모두 이해하고 함께하기가 쉽지는 않았읍니다.  할머니는 당연히 그런 사람.  좀 특별하고 유별난 사람등으로 치부하는 사람도 많았겠지만 똑같은 육신을 가졌을진대 단 하루인들 그것이 쉬웠을까 생각해 봅니다.  분명 할머니도 단 한번도 쉬운날이 없었겠지요.  조금만 여유가 되어도 편함과 누림을  추구하고 싶어지는 것이 모든 사람의 평범한 심리인데.  

1세대 크리스챤으로 독하게 자신을 몰아붙여가며 수시로 공격해 오는 영적인 전쟁 속에서 자신과 자손들을 지켜내려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이 그동안 얼마나 고된 삶이셨어요.  

흑백과 호불호가 뚜렸하여 주위의 가까운 사람들과 부딛칠때도 많았고 일찍 세상에 내몰려져 부족한 표현의 기술로 여러  오해를 낳기도 했지만 마음은 늘 의을 찾아 믿고 있는 정석대로 살려 애쓰신걸 압니다.  더 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품고 싶어했고 가난한자와 외로운자, 고통속에 있는 이웃들에게 할머님이 하실 수 있는 최선, 즉 기도로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셨지요.  원하는데로  늘 성공하는것은 아니었지만 정직과 진실되기를 항상 갈망하셨고 이웃과 세계를 품기 원하셨지요.  때로는 한없이 부드럽게 상냥하게 준석이의 표현대로 본인은 별로 가지는 것에 크게 연연해 하지 않으면서도 다른사람에게는 넘치도록 퍼주고, 할수만 있다면 좋은것으로 뭐든 주기를 늘 즐거워 하셨던 할머니.  신앙이야기와 전도할 기회를 얻으면 없던 힘도 몇배로 살아나  언제나 심장이 뜨거워 지시던 할머니.  할머니는 언어의 다름이나 꿈과 현실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데 결코 주늑 드신적이 없으셨던것 같읍니다.  아무리 현실이 암담해 보여도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늘 할머니가 할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행동으로 옮기셨으니까요.  

호기심도 많고 유머도 좋아하셨고 때로는 넘치는 자신감이며 주체할수 없는 끼, 예술적인 감각도, 욕심도 많으셨고, 20대도 아쉽지 않을 기억력이며, 먼길 떠나시기 바로 전에도 벽에 있는 시계를 정확히 읽으실수 있는 눈등 누구보다 밝으셨던 오감, 아니 육감, 그리고 마지막 호흡까지도 또렸하셨던 맑은 정신과 강한 정신력.  마지막 병상에서 수술받으시기전에 이미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시던 모습. 수술 집도의에게도 오히려 축복기도를 해 주시며, 100세 가까이 되신 분에게 무리한 수술을 하셔야 하는 의사에게 아무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위로를 건낼수 있는 여유, 단 최선만을 다해달라는 말과 함께, 하나님 앞에 생명마저도 모두 내려놓으신 의연한 모습.  

죽음의 문턱에서 할머니가 보여주신 삶과 자신에 대한 솔직함, 그리고 끝까지 하나님께 순종하고 모든것을 맡길수 있는 용기와, 자녀들을 향한 사랑의 고백이 할머니의 진정한 믿음이요 성숙한 어른의 모습이었음을.  할머니께서 육으로 낳으셨든 영으로 낳으셨든 기도와 영으로 품은 모든 자녀들을 대표하여 할머니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하나님을 믿기 전 60년 동안도,  하나님을 믿고 살아온 지난 40년간도, 특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때에도 할머니와 지난 98년을 동행하셨고 지켜 보호하여 주셨던 그 선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  

할머니가 그렇게 사랑하시던 하나님 곁에서 이제 인생의 모든 고된 짐을 내려 놓고 평안히 쉬세요.  수고 하셨어요, 할머니.


손녀 김희영 올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 시편 23편

To send flowers to the family or plant a tree in memory of Deok K Park (박덕규 권사), please visit our floral store.

 Service Program


Services

Funeral Service
Friday
June 2, 2017

10:00 AM
New Life Church - SW
4201 Stine Rd
Bakersfield, Ca 93313

Graveside Service
Friday
June 2, 2017

2:30 PM
Forest Lawn Memorial Park
6300 Forest Lawn Dr
Los Angeles, Ca 90068

© 2020 Bakersfield Funeral Home. All Rights Reserved. Funeral Home website by CFS & TA | Privacy Policy | Terms of Use